21세기 글로벌 종자전쟁 ①,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독일기업이 돈을 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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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인 청양고추, 대부분 사람들은 청양고추가 한국에서 나고자란 채소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청양고추를 먹을 때 마다 우리는 어떤 독일기업에 돈을 내고있다. 이뿐만 아니라 양송이 버섯을 먹을 때마다 이탈리아 기업이, 팽이버섯이나 양파, 양배추를 먹을 때마다는 일본 기업이 돈을 벌고 있다.

 

물론, 우리가 먹는 식재료는 대부분 '국내산'이긴 하지만 이들에게 재배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해외기업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작물 품종에 '종자 저작권'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떤 품종을 개발하고 싶으면 그 품종을 개발고 종자를 공급하는 업체에다가 로열티를 내야한다. 즉, 작물을 재배하는 데 매년 로열티를 지불해야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한번 로열티를 지불한 종자에 대해서는 매년 새롭게 수확한 씨앗을 다시 씨뿌리면 더이상 돈을 지불해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며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종자법은 과거 고려시대 문익점 선생님이 목화씨를 붓뚜껑에 몰래 가져와 재배하는 것과 다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품종 개량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농경의 역사는 곧 품종 개량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대부분의 주요 작물들은 품종을 개량한 형태로, 이들이 한때 야생종이었을 때는 상품가치가 없을 정도로 품질과 생산량이 뒤떨어졌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쌀, 밀, 옥수수 등이 주요 식재료로 자리매김하면서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 천년에 걸쳐 개량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사실 과거 전통적인 방식의 품종개량은 매우 단순했다. 벼를 수확하면서 다른 벼들보다 쌀이 많이 붙은 종을 모아 다시 심고, 더 좋은 이삭이 나오면 다시 골라 심은 형태로, 이를 단순반복하다보면 결국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유전형질만 남아 하나의 품종으로 고정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진화의 원리 중 가장 대표적인 자연선택을 갖다가 인간이 통제하는 것인데, 이는 다윈이나 멘델의 유전법칙이 등장하기도 전부터 인류가 본능적으로 그 원리를 깨닫고 행해온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강아지풀이 조가 되고, 유채가 배추가 되었으며 감자와 아몬드에서는 독성이 제거된 것이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라서 멧돼지는 돼지가 되고, 늑대는 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이러한 자연적인 품종 개량은 불확실성이 높고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된 유전학과 생물학에 의해 품종 개량은 자연이 아닌,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년에도 수백 가지의 새로운 작물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들이 세계 시장에 소개되고, 평가받고, 도입되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우면서 상품성 높은 품종들이 전 세계로 도입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우수한 종자들을 보유하고 추후 개량을 하기 위해 고급 연구 인력과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주요 선진국과 해당국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농민들이 수확한 작물의 씨를 받아 다시 재파종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품종 작물들이 이런 식으로 재파종을 하면, 다음 세대부터는 냉해나 병충해로 쉽게 쓰러지거나, 잘 자라더라도 열매가 별로 열리질 않아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종자 기업에서 재파종을 막기 위해 꼼수를 쓴 게 아니라, 멘델의 유전법칙의 원리에 따른 탓이다.

 

 

예를 들어 종자 기업은 종자를 개발할 때 서로 다른 형질로 고정시킨 부계 순종과 모계 순종을 따로 개발하고 이 둘을 서로 교배시켜 잡종 1세대 종자를 판매한다. 이 종자는 우열의 법칙에 따라 양친의 유전자 중에 우성인자만이 확정적으로 발현되기 때문에 교배를 통해 원하는 형질만 얻을 수 있고 균일한 상품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잡종이 생육, 건강, 생존력, 번식력 등에서 양친보다 우수하고 유리한 유전적인 성질을 갖게 되는 '잡종 강세'의 우위를 취할 수도 있다. 식물들에도 잡종 강세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렇게 일부러 잡종을 만드는 종자를 판매해야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최대한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배 방식이 잡종 1세대 종자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잡종 2세대 종자로 재파종을 하면 유리한 형질이 사라지게 된다. 2세대 종자는 1세대 때는 숨겨져 있었던 열성인자끼리 접합하여 원치 않는 형질이 발현되기 때문에 작물의 생장이나 상품성이 균일하지 않고, 1세대 때 있던 특징들이 희석되어 버린다. 또한 같은 종자끼리 자가수분 또는 근친교배하는 탓에 잡종 강세의 효과가 없어 작물의 수확량이나 생존률 자체에서도 1세대 씨앗보다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종자기업은 일부러 잡종 1세대 종자만을 판매함으로써 높은 상품성과 수확량을 보장하고 이와 동시에, 매년 새로 종자를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잡종 1세대 교배로 판매하긴 힘든 종자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쌀이 있다. 쌀은 인위적으로 타가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애초부터 단일 종자로 육종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 밖에 딸기와 포도는 뿌리나 줄기를 땅에 묻어서, 사과나 귤은 가지를 접목해서 번식시키기 때문에 종자나 묘목을 매년 다시 사도록 유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국제법으로 보호가 되는 형국이다.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 연맹'에 의해 국내법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품종 보호권이라는 게 강력하게 인정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작물의 출하 단계에서나 묘목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권리자의 허가 없는 불법 증식이 있었다며 최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요즘에는 유전자 감식을 동원해 단속하기 때문에 법망을 피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알려진다. 또한 국내 판권이 없는 외국 품종의 경우에도, 수출 과정에서 통관 거부를 당할 수가 있다. 쉽게 말해 해당 법은 일종의 원천 기술로, 또는 음악이나 영화의 저작권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 연맹>
식물 신품종 육성자의 권리보호 및 식물종자 보증제도 등을 국제적으로 보호해주기 위한 국제 식물종자보호연맹이다.유럽에서 식물품종이 특허법으로 보호되어 왔으나, 식물의 특성상 특허요건을 수용하기 어려워 대안으로 특허와는 요건을 달리하여 설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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