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물 품종들은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현재 어느 정도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을까?
사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흔히 먹는 곡물이나 채소, 과일들의 상당수가 외국에서 개발되었거나, 외국 기업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화훼, 과수, 버섯 류의 품종에 관하여 해외 기업에 매년 약 100억~200억 가량의 종자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특히, 양파나 버섯 등은 한국인에게 필수나 마찬가지인 채소들이기에 안먹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외국 품종에 대한 의존률이 가장 높은 건 특히나 과일 분야인데,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라봉이나 천혜향 같은 감귤류 품종들은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이고 최근 인기 있는 샤인머스켓 또한 일본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부사나 아오리 사과 역시 우리는 충주 또는 영천 등지의 재배지 사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혈통으로는 일본 품종(전체의 77%)이라고 한다. 나주 배 역시 나주 토종 종자가 아니고 일본 품종인 신고 배(전체의 85%)의 파생이라고 보면 되겠다.
제일 의외인 건 감귤인데, 제주 감귤 농가에서 재배하는 감귤 품종 중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거의 94%가 일본 품종으로 압도적인 상황이다. 감귤과 비슷하게, 포도 역시 감귤만큼 외국 품종 점유율이 높아서, 국내 고유의 품종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과일들의 경우엔 판권이 만료되거나 등록 안 된 품종들도 많아 무조건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진 않다고 한다. 그 근거로 과일 품종에 대한 '권리존속기간'은 등록 후 20년, 과수나 임목은 25년 정도라고 한다.
이외에도 특용작물이 버섯이나 꽃 같은 화훼작물들도 각각 41%, 67%로 외국 품종의 점유율이 높은 상황이고, 높은 국산화율을 달성한 채소 분야도 양파(70%)나 토마토(45%)처럼 외국산 품종이 강세를 보이는 작물들이 있다. 한번 심으면 수십년을 수확하는 과일 분야와는 달리, 이들 품종들은 품종 갱신이 빠르게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국산화율과는 별개로 로열티 비용이 빠르게 지급되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종자 저작권이 해외 몇몇 선진국들에 편중되고 한국의 종자 해외 의존율이 높은 이유는 먼저 역사적 사건에 기인하기 때문이라 한다. 종자 저작권에 대한 중요성을 빠르게 인식한 해외 선진국들은 이들을 빠르게 확보하려했던 반면, 한국은 불과 100여년 전만해도 식민지배와 전쟁 등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서민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식량 확보가 우선이였던 탓이다. 당장에 먹을 쌀이 필요했던 한국에게 맛있는 쌀은 의미가 없었기에 일단은 생산량이 우수한 통일벼라도 확보하는게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IMF 외환위기 역시 국내 종자 경쟁력을 떨어뜨린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국내 대표 종자기업으로 꼽혔던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종묘 그리고 청원종묘 이 4곳의 회사가 모두 도산으로 인해 외국 기업에 매각되고 만다. 당시 이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종 종자나 고급 육종 인력 모두 해외로 흩어져버리게 된다.
이 때 팔려나간 종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청양고추'로, 본래는 국내 기업인 중앙종묘가 판권을 가진 순수 국내 개발 품종이었지만 IMF 당시 이 회사가 멕시코 기업 세미니스에 매각되었고, 이 회사 또한 미국 기업 몬산토에 흡수되었으며, 최근에는 몬산토가 독일 기업 바이엘에 인수되면서 독일에 청양고추 판권이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합병 이전 | 1차 M&A | 2차 M&A | 합병 이후 업체명 |
청원종묘 | 사카타 | - | 사카타 코리아 |
서울종묘 | 노바티스 | 신젠타 | 신젠타 종묘 |
흥농종묘 | 세미니스 | 몬산토 | 몬산토 코리아 |
중앙종묘 | 세미니스 | 몬산토 | 몬산토 코리아 |
씨덱스 | - | 바이엘 크롭 사이언스 | 바이엘 크롭 사이언스 |
하지만 한국만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다. 종자 산업에 투입되는 비용과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20세기 말부터 다국적 식량 기업과 화학기업들이 종자의 독점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게 기술과 자본을 모두 갖춘 기업들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한편, 세계 각국의 영세한 종자 기업들까지 인수합병해나가면서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종자 시장의 70%를 7개의 기업이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상 독과점 상태이다.
순위 | 국가 | 회사명 | 점유율 |
1 | 독일 | Bayer(Monsanto) | 16.9% |
2 | 미국 | Corteva Agriscience | 13.3% |
3 | 중국 | Syngenta(ChemChina) | 5.6% |
4 | 독일 | BASF | 4.7% |
5 | 프랑스 | Vilmorin | 2.6% |
6 | 독일 | KWS | 2.3% |
7 | 덴마크 | DLF | 1.8% |
오늘날 당장의 반도체나 전기차 패권을 확보하는 것보다, 미래의 식량 위기를 염두했을 때 이들 종자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이렇듯 종자의 육종이 글로벌 공룡 기업간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 변화하면서 최근엔 첨단 유전공학과 화학공학까지 동원되어 다양한 신품종과 비즈니스 모델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 변형생물인 GMO는 특정 생물 종의 DNA에 다른 종에서 가져 온 유용한 DNA를 삽입하여 개발된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여, 1994년에는 무르지 않는 토마토가 최초로 상용화되었으며 이후로도 수많은 작물들에 유전자 삽입 기술이 적용되어 오늘날에는 콩/대두(95%), 옥수수(90%), 목화(92%), 유채 등의 작물에서 GMO 작물의 비중이 압도적이 상황이다.
특히, 이 GMO 산업분야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은 지금은 바이엘에 인수된 몬산토(MONSANTO)인데, 이들은 1970년 '라운드업'이라는 강력한 제초제를 개발한 뒤, 1996년에는 이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닌 유전자 변형 품종 '라운드업 레디' 시리즈를 출시하여 제초제와 곡물 종자를 세트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라운드업 레디>
몬산토에서 강력한 제초제 '라운드업'과 라운드업에 내성이 있는 GMO 작물 종자를 동시 개발하여 출시했다. 이들을 '라운드업 레디'라고 부르며 콩, 옥수수, 면화, 수수 등이 있다. 1974년에 출시된 라운드업은 몬산토를 세계 최대 GMO 기업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미국에서 재배되는 콩 90%, 옥수수 80% 이상이 몬산토의 GMO 품종이라고 하니, 이 종자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겠다.
또한 최근에는 유전자 삽입 기술을 넘어 아예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로 응용되고 있다.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이 기술은 DNA에서 특정 부분만을 잘라내고 접합하는 기술인데, 이렇게 하면 다른 종의 DNA를 삽입하는 대신 기존 DNA에서 특정 기능만 비활성화시키거나 염기서열의 위치를 더 정교하게 타겟팅해서 갈아끼울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전자 편집 기술이 삽입 기술에 비해 성공률과 안정성이 더욱 높다고 밝혔으며, 이에 기존의 '유전자 변형 작물'이 아닌, '유전자 편집 작물'이 개발 및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늘날 작물의 품종은 하나의 원천 기술이자 무기인 것이다. 단순히 로열티 수익/비용 문제를 넘어, 품종의 개발과 보호는 가까운 미래에 식량 안보로 직결될 수도 있는 중요한 산업이다. 종자의 중요성을 확인한 우리나라 역시 품종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최근 상당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품종이 대부분이었던 딸기는 현재 2020년 기준 96%가 국산 품종으로 대체되었고 키위(26.6%), 버섯(58.8%), 장미(31%)도 빠르게 국산화를 달성하고 있다.
사실 종자를 소수의 몇몇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은 일장일단이 분명하다. 막대한 자금력과 우수한 기술력을 빠르게 투입해 양질의 품종을 개발하여 전세계 병충해와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지나친 품종의 단일화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감소나 인위적인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유전자 오염 등이 미래에 어떤 부작용을 발생시킬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다.
품종 개량의 역사는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가지고 온 결정적인 성과이다. 하지만 장단이 분명한 만큼 종자 산업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인력과 기술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종자 산업은 식량 위기를 해결할 중요한 미래 먹거리이기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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